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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story

프린세스 카이울라니의 역사

프린세스 빅토리아 카이울라니

프린세스 카이울라니는 칼라카우아 왕의 여동생인 프린세스 밀리암 리케리케와 후에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의 통치기간 중 오아후 주지사가 된 스콧 아치볼드 사이에서 1875년 10월 16일에 태어났습니다.

칼라카우아 왕이 프린세스 카이울라니의 대부, 그리고 프린세스 루스가 그녀의 대모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프린세스 카이울라니를 무척 귀여워 하여 와이키키에 있는 그녀의 토지의 일부인 10 에이커의 "아이나하우 정원"을 프린세스 카이울라니에게 선사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토지 내에 프린세스 카이울라니의 아버지 스콧 아치볼드는 가족을 위한 2층 집을 지었습니다. "아이나하우"는 영어로 "하우 트리의 땅"이라는 뜻으로, 쉐라톤 프린세스 카이울라니 호텔은, 그 토지의 입구 부근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프린세스 카이울라니는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 중에서도 스코틀랜드의 유명 작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이야기를 반얀 트리 아래의 벤치에 앉아 듣는 것이 그녀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습니다. 두 사람의 일과는 반얀 트리에서 스티븐슨의 세계 여행 모험 이야기를 들은 후 아이나하우 구내를 산책하고 그녀의 아름다운 정원에서 기르고 있는 공작새에게 먹이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녀는 "공작 공주"로 불릴 정도로 공작을 좋아했으며, 부지 내에는 50마리 이상의 공작을 사육했습니다.

프린세스 카이울라니는 1889년 13세 때 영국으로 유학하여, 음악, 노래, 문학, 역사,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배웠습니다. 그녀가 영국에 유학하고 있는 동안 그녀의 조국인 하와이에서는 군주 국가에 반대하는 백인과 하와이인의 싸움이 시작되었습니다.

칼라카우아 왕이 사망하고, 1891년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즉위하자마자 "하와이 왕국을 남겨두기 위하여 힘이 되어 달라"는 메시지를 프린세스 카이울라니에 전하고,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있는 워싱턴 DC에 그녀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클리블랜드 대통령에게서 기대하던 답변을 얻지 못하고 프린세스 카이울라니는 영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카이울라니는 22세에 영국에서 고향 하와이로 귀국했습니다. 그 후 하와이섬에 놀러간 그녀는 친구들과 승마를 즐기다가 폭풍우를 만난 후, 앓던 감기가 악화되어 1899년 5월 23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녀가 죽었을 때, 그녀가 기르고 있던 공작새들이 일제히 통곡하기 시작하여 몇 마리의 공작새는 울음을 그치지 않아 지나친 소음으로 인해 아버지인 스콧 아치볼드는 부득이하게 그 몇 마리를 처분해야 할 정도였다고 전해집니다.

 

호텔에 남아있는 프린세스 카이울라니의 흔적

쉐라톤 프린세스 카이울라니 호텔 프론트 옆에 장식되어 있는 프린세스 카이울라니의 초상화는 1955년 호텔 오픈 시 호놀룰루의 화가 로이드 삭스톤이 호텔에 보낸 것입니다. 프린세스 카이울라니가 입고있는 드레스의 색깔은 노란색이며, 이는 왕족을 상징하는 색상입니다.

호텔 관내에는 많은 프린세스 카이울라니 사진이 장식되어 있지만, 웃는 얼굴을 찾아보기는 어렵습니다. 그 이유는 사진 한 장을 찍기 위해 매우 오랜 시간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그로 인한 피로로 웃는 얼굴을 계속 연출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정 속에서도 단 한 장, 미소를 짓고 있는 사진이 프린세스 윙의 11층에 전시되어 있습니다. 이 사진은 1895년 공주가 하와이 귀국하기 직전에 유럽에서 촬영된 것으로, 고향에 돌아갈 기쁨으로 가득한 공주가 미소짓고 있는 사진입니다.

 

하와이 왕국, 한국, 프린세스 카이울라니

1795년 카메하메하 대왕의 통치에 의한 하와이 왕국이 성립한 후 카메하메하 2세, 3세와 하와이 왕국은 충실한 시대를 맞이합니다.

1835년에는 카우아이 섬에 사탕수수 농장이 들어선 후, 미국의 중요한 설탕 공급지로 경제 발전을 이루어갑니다.

1854년 카메하메하 3세의 사후, 삼대에 이은 통치자가 단명으로 세상을 떠나게됩니다. 이 뒤를 이은 프린세스 카이울라니의 삼촌 칼라카우아 왕의 시대가 되면서, 설탕 관세 문제로 인해 농장을 경영하는 백인 세력과의 대립이 격화됩니다. 1891년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이 즉위하지만, 1893년 쿠데타로 하와이 왕조는 붕괴, 하와이 공화국이 탄생합니다. 이때 릴리우오칼라니 여왕은 이올라니 궁전에 6개월간 유배됩니다. 당시에 자신의 나라를 걱정하며 작곡한 것이 그 유명한 "알로하오에"입니다.

한편 한국에서는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에 의해 이민이 시작되어, 1903년 1월 13일에는 조선에서 미국으로의 최초의 이민자들이 하와이에 도착했습니다. 제 1기의 하와이 이민은 한국내의 미국계 개신교 교회에 의해서 조직되었기 때문에 개신교 신자가 많았고 일본인들처럼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했습니다. 이는 당시 선교사들이 미국 농장주의 요청으로 교인에게 하와이 이민을 권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1898년 미국 의회에서 하와이의 합병이 결정되어 1959년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가되었습니다.